내가 살아오면서 많은 자전거를 타고 버렸지만...
10년 넘게 닦고 조이고 기름쳐서
아직도 옆에 끼고 타는 유일한 자전거가
바로 이 놈이다.
(물론 '가격이 비싸서... 끼고 산거 아니냐?'라고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이 자전거가 내 몸에 맞는 건 사실이다.)
이 자전거가 애마가 된 사연이 좀 길다.
벌써 10년전...
평소 60~65kg을 유지하던 체중이
갑자기 80kg에 육박하게 되었다.
워낙 게을러서
운동을 멀리하는 체질이라
따로 시간을 만들어 운동을 한다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즉 필수적인 일에 운동을 덧붙이자'라고 마음먹고 고민한 끝에...
'자전거 + 출퇴근'을 결심했다.
결심과 의지는 하나의 가슴에 있건만 왜 그리 서로 멀리멀리 떨어져 있는지...
살이 찐 이유가 게으름의 결과란 걸 너무도 잘 알기에...
다이어트를 이유로... 좋고 비싼 자전거 샀다가...
며칠 타지도 않고 그냥 처박아 놓았다가는...
후환이 두려웠다.
자전거 타기의 본질은... 다이어트를 잊으면 안되었다.
'이번엔 자전거야?
아주 자전거를 사고 싶어서 살을 찌우고,
그 살을 뺀다는 이유로 자전거를 사겠다는거 아냐?'
그 분의 목소리가 듣기 싫어서...
이번 만큼은...
그래서 자전거에는...
투자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남는 자전거 있으면 달라... 안쓰는 자전거 있으면 달라'고 부탁했건만...
주변엔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없고...
먼지와 녹이 잔뜩 낀... 방치된 자전거를 갖고 있는 분도 없었다.
'신문을 하나 구독해 볼까?'
이미 그 분께서 신문 보급소와 장기 구독에 따른 댓가와 구독료 인하 협상을 마무리한 터라...
저렴한 자전거를 알아봐야 했다.
누군가 그랬다.
'장물로 나온 자전거를 싸게 판다'는 동네 자전거포가 있다고...
동네 자전거포에 장물 자전거가 있냐고 물었다가...
욕만 빼고는 다 먹었다.
내 질문이 틀렸다.
사실 안 맞은게 다행이다.
"사장님 요즘 싸게 파는 중고 자전거 있다면서요?
그 있쟎아요... 중고 XX 거래... 여기도 있나요?"
일산 뿐만이 아니라 부천까지 영역을 넓혀 첩보를 입수하여 가봤지만...
첫마디가...
"가라" 였다.
"꺼져"가 아닌게 다행이다.
인터넷을 뒤졌다.
그 분께서는 혹여나 제가 또 파~파~팍~!!! 지를까 연신 불안해하셨다.
아니라고 말을 해도 여전히 불안해 하셨다.
(아직도 내 공인인증서는 내가 관리하지 않는다.)
"걱정마라. 이번엔 10만원 정도에 산다. 20만원...그 이상 안 넘는다"
이번 자전거 구매는 오로지 살 빼는 용도이지...
가호를 잡거나 브랜드나 디자인을 추구하는 영역이 아니었고...
또 자전거 그까이꺼... 1~20만원이면 사겠지...하는 생각과
또 좋은 제품/브랜드가 있는지도 몰랐고...
아는 자전거 브랜드도 삼천리가 전부였다.
삼천리에서 "씨티라이더"라고 하는 자전거가 12만원에 올라왔다.
하이브리드 자전거라고 하는데... 처음 듣는 용어였다.
생활형, 로드, 엠티비, 철티비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는데...
하이브리드라...
12만원에 샀다. 뭔지도 모르고 샀다. 가격이 착해서 샀다.
자전거로 출퇴근 할꺼면 꼭 하이바를 쓰라는 주변의 권유에
인터넷으로 3만원 짜리 하이바도 하나 샀다.
'20만원은 넘지 말아야지... 그런데 벌써 15만원이네...?'
자전거가 도착했다.
반 정도 조립된 상태로 배송을 해서 패달만 조립하면 간단히 끝났다.
하이바도 도착했다.
박스를 끌르고... 하이바를 딱 써보니...
캬...
들어가지 않았다.
머리에 걸친채 올라가 있었다.
하이바에 싸이즈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판매자에게 연락해서... 가장 큰거로 달라고 했다.
그렇게 두번째 하이바를 썼다.
판매자에게 또 연락을 했다.
"가장 큰 걸로 달라고 했는데, 왜 자꾸 작은 걸 주세요?"
"그게 가장 큰 건데요?"
"환불해주세요."
'이상하다. 군대 철모도 다 쓴 사람인데....'
인터넷은 못 믿겠다.
집을 나섰다.
동대문 운동장 야구장 주변에 있는 스포츠 상가를 모두 뒤졌다.
"여기서 파는 가장 큰 하이바 주세요"
이 말만 30번 넘게 했다.
'그래... 무슨 자전거...
그래... 무슨 하이바...
우리가 언제부터 하이바를 썼다고...
그냥 타자...'라고 돌아설 무렵
한 상점에서 "잠깐"을 외치셨다.
"이거 한번 써봐, 아마 맞을꺼야..."
Cratoni
'오!... 잘 맞는다.'
"얼마에요?"
"15만원"
"비싸요, 깎아주세요."
"안돼... 이 제품은 정가가 15만원이야... 싫으면 사지마..."
아무리 얘기해도 절대 안 깎아준다.
그도 그럴 것이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걸 이미 그는 알고 있었고...
구매결정권이 자기한테 넘어온 걸 그는 알고 있었다.
고수다.
내 사정을 설명했다. 아니... 내 사정을 우겼다.
'내가 살이 쪘고...
출퇴근과 운동을 붙여서...
이제 자전거를 좀 타 볼라 했는데...
자전거 가격이 12만원인데...
하이바가 15만원이란게 말이 되느냐?
울 마누라가 알면... 하이바로 돈 챙겼다는 소리밖에 더 듣겠냐?
제 사정을 다 아셨다면...
실제 가격이 15만원 이라고 하셨어도...
12만원에 파셔야 인지상정이다.
사실 12만원도 비싸다.
보토 2~3만원이면 하이바 다 사는데...
15만원이 뭐냐?
하이바가 바가지냐?'
그렇게 끝가지 우겨서 3만원 깍았다.
자전거보다 더 비싸서는 안된다는 말에
그렇게 12만원에 샀다.
그게 독일제 대두용 하이바 Cratoni...
이렇게 2007년 나의 자전거 출퇴근이 시작됐다.
20만원을 넘지 않으려 했는데...
머리때문에 24만원이 되어버렸다.
괜찮다.
머리는 커도... 머리는 좋으니까...ㅎㅎ
현재 스코어 24만원... 4만원 오바다.
불편함과 구매 목록
1.
처음에는 일산에서 합정동까지
그냥 집에서 입는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옷이 헐렁하다 보니 무릎 부근이 자꾸 쓸렸다.
2.
아무래도 시민공원으로 달리다 보니...
날파리와 수많은 벌레와 부딪쳤다.
자전거를 타다보면 아무래도 호흡이 힘들고...
입으로 숨 쉬다 보면...
뜻하지 않게 고단백 벌레를 흡입하는 일이 잦아진다.
뱃속까지 한번에 들어가면 괜찮은데...
꼭 기관지에서 걸린다.
생 기침을 심하게 하고 나니...
하늘이 노랗다.
저녁 노을은 그래서 노란가보다.
3.
출근이야 환하니까...괜찮지만...
퇴근할 때는 조금만 꼼지락 거려도...
금새 어두워진다.
4.
벌레를 흡입하게 되는건 그렇다 치지만...
이젠 눈으로 들어간다.
세게 달릴 때 눈으로 들어가면 정말 아찔하다.
5.
살을 빼려고 한 운동이니 만큼
내가 지금 빡세게 운동을 하는지 판단을 해야 하는데...
이 자전거로는 측정 방법이 없었다.
6.
혼자 달리다 보니... 영 심심하다.
음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없다면 라디오라도...
7.
한참을 달리는데 전화가 온다.
그럼 자전거를 세우고...
배낭을 열어서...
핸드폰을 빼서 통화를 해야 한다.
불편하다.
8.
잘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온다.
깜짝 놀랬다.
9.
아침에 출근할 때 동쪽 방향이다 보니...
눈이 많이 부신다.
10.
야간에 자전거를 타다보면...
아무래도 차와의 안전거리가 항상 문제다.
나를 알려야 하는데...
어떤 방법이 좋을까...?
11.
계절이 바뀌는가?
아침 저녁으로 좀 춥다.
특히 손이 많이 시렵다.
헐... 발끝도 시렵다.
12.
나만 그런가?
엉덩이가 많이 아프다.
이젠 자전거에 엉덩이를 대면...
엉덩이에서 불이 나는것 같다.
13.
배낭에 이것 저것 많이 넣다보니...
무겁다.
무거운건 참겠는데...
자전거 타면 등에 땀이 많이 나는데...
배낭이 등에 붙어있다보면...
배낭이 푹 젖는다.
이것 말고도 엄청난 불편함과 문제가 많은데...
(빵꾸, 브레이크, 청소 등등)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했다.
1 = 쫄바지로 생채기 해결
2 = 버프(마스크) 착용
3= 후라쉬 + 18650 배터리 + 충전기 + 여분의 배터리
4 = 보안경
5 = 자전거 속도계 + 케이던스
6 = MP3 + 라디오 + 앰프
7 = 핸드폰 파우치
8 = 자전거 딸라이
9 = 선글라스 (보안경은 저녁때 쓰는거...)
10 = 반사경 + LED 안전등 + 여분의 배터리
11 = 장갑(봄여름겨울용) + 발끝 토시
12 = 엉덩이 패드
13 = 자전거 전용 배낭
해결 방법
생체기가 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민망바지(쫄 스판바지)를 사게 되고...
벌레가 자꾸 입에 들어오니 마스크를…
저녁에 어둡다보니 라이트를…
운동 효과를 측정하려다 보니 속도계를…
혼자 달리다보니 심심해서 스피커와 mp3를…
핸드폰을 받으려다보니 파우치를…
사람들이 불쑥 끼어드니 딸랑이를…
밤길 위험하다보니 반사 스티커와 반짝이 LED를…,
햇살에 눈이 부시다보니 선글래스를…
짐을 가지고 다녀야 하기에 배낭을…
손이 시렵고 까져서 장갑을…
엉덩이가 아프다보니 엉덩이 패드를….
이것 말고도 엄청 많은데… 어쨌든 하나둘씩 용품을 사가면서 잔차 출근을 이어갔다.
번호로 따지면 30번이 훌쩍 넘어갔고...
그렇게 지출한 돈이 자잘하게 70만원을 넘어갔다.
모두가 다 이유가 있는 지출이다.
"다 건강을 위해서다."
현재 스코어 70만원 이상... 계산도 안된다. 그런데 ...ing다.
잔차로 출퇴근은 정말 상쾌했다.
다행히 일산에서 마포까지는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어
출근길이 즐겁고,
꽉 막힌 자유로에 마냥 서있는 차를 보며 희열도 느꼈다.
희열도 잠시...문제가 생겼다.
내 몸이 이상해진거다.
소변이 무지 마려운데도
소변을 눌 때 아프기도 하고… 심지어 나오지도 않는다.
또 아침에 텐트를 전혀 안 친다.
자전거 안장이 전립선을 심하게 압박해서 그렇단다.
여기저기 물어보고 인터넷을 배회하던 중에 '전립선 안장'이라는 있는 걸 알았다.
전립선과 맞닿는 부위가 푹 패여 있어서, 전립선을 압박하지 않는 구조다.
또 돈 문제다.
전립선 안장을 좋은 걸 사자니
(이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비싼게 좋은 거다라는 인식을 당연히 가지고 있었고
이건 무조건 해결해야 하는 거였다.
나에겐 가족이 있지 않은가!!!)
싼것이 5만원 ~ 비싼게 40만원 정도 한다.
이미 자전거와 액세서리를 사느라 이미 70만원을 넘게 지출한 터라
전립선 안장을 또 사달라고 그분께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냥 버스타고 다녀. 그게 더 싸... '
하는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고가의 전립선 안장 대신
전립선 보호 패드(팬티형으로 패드가 달려있는) 바지를 구매해서 입고 다녔는데…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 이 패드 바지가
나한테는 오히려 전립선을 더 압박했다.
'전립선 안장이 답인가... 그럼 안되는데...'
자전거 12만원 짜리에, 전립선 안장을 10만원돈이나 주고 살 순 없었다.
이렇게 가다보면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았다.
무언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그래 자전거를 바꾸자'
그래 자전거를 바꾸자.
아예 자전거를 좋은 것으로 바꾸자고 결론을 내리고
전립선을 자극하지 않는 자전거를
수소문했다.
그래서 찾은게 바로 리컴번트 자전거다.
(리컴번트도 종류가 많다. 그중 BigHa가 내 애마가 됐다)
자전거 출퇴근을 그만두기는 싫었다.
이유는... 장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 차비가 안든다.
(그간 돈도 많이 들었지만, 차비 생각하면 그게 그거다.)
- 술을 확실히 덜 먹는다.
- 살이 빠졌다. 3개월만에 10%가 없어졌다.
- 나중에 안 일이지만, 흰머리가 사라졌다.
(염색비용을 아꼈다.)
- 폐활량이 좋아졌다.
- 피부가 정말 좋아졌다.
- 얼굴이 바뀌었다.
- 성격이 온순해졌다. 자전거는 사람을 느긋하게 만든다...
(자전거 출퇴근은 이제 다이어트가 아닌 유일한 출퇴근 수단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자전거를 인터넷으로 국내외로 샅샅히 찾다가
구조나 안정감, 생김새 등을 고려할 때
내 맘/눈에 확~~~ 들어온게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또 돈이다.
자그마치 $4천!!!
통관에 배송비를 고려하면 아무리 적게 든다고 할지라도
7백만원이다.
마누라한테 말도 못하고...
(이미 이런 식 - 카메라, PDA, 컴퓨터, 자동차 등등 - 으로 써버린 돈이 상상을 초월함)
끙끙 거리다, e-bay에 접속해서 검색을 해보니…
오호라...! BigHa를 싸게 판다.
일명! 리퍼 제품.
$1,000
그분을 설득해야 했다.
시간이 없다.
누가 채가게 나둬선 안된다.
시간이 없다.
자전거 한대 가격이 왠만한 중고차 가격이다 보니
그분께 섣불리 접근했다가는 시작도 못하고 박살날 것이 뻔하기에,
세금, 통관비용, 기타 등등의 비용을 모두 섭렵한 후,
알현하러 갔다.
이런 저런 장대한 계획과 운동 효과,
그간 자전거로 6개월간 쉬지 않고 출퇴근한 근면성을 부각하고
가격을 말하려는 찰라…
“사!”
가격을 듣지도 않고 사라고 했다.
내 귀를 의심했다.
그분께서는 아마 자전거가 비싸봤쟈 지가 자전거지...하고 판단을 한 모양이다.
그래서 가격을 얘기했더니… 또
“사!”
너무 놀랐다. 흔쾌히… 넘어가는 법이 없었는데…
이유를 물었다.
“어차피 헬스클럽 끊었다고 생각하고 사~~~”
‘고맙습니다. 하늘님… 제게 이런 그분을 보내 주셔서…’
바로 이베이에서 지르고 낙찰을 간신히 받았다.
문제가 또 발생했다.
이번에도 돈문제다.
미국에서 소포를 보낼때는 '무게-부피'로 계산한단다.
무게 가격과 부피 가격중 더 비싼 요금을 책정한단다.
BigHa는 자전거를 완전 조립한 상태로 박스 배송을 한다.
박스 크기가 현관문보다 크다.
무게 30kg도 엄청난 금액이 붙는데...
부피도 엄청 났다.
안되는 영어로 판매자에게 메일을 썼다.
한국은 물건가격+배송비가 $600이 넘으면 세금을 쎄게 맞는다.
부탁인데... 계산서에 $550으로 써달라.
내가 기계과를 졸업했다. 자전거 분해해서 줬으면 한다.
배송비용이 부담된다.
자전거 안 상하게 포장 잘해달라.
답변이 왔다.
한국에 몇번 보내봤다.
니가 4번째다.
우리가 거래하는 업체가 있다.
알아보니 $250이면 된단다. 괜찮냐?
감격의 눈물이다.
탱큐메일을 날렸다.
자전거가 안온다.
자전거가 안온다.
이 시티라이더는 타기 싫다.
자전거가 안온다.
집에서 전화가 왔다.
한달 정도 지났다.
"박스가 엄청 크데, 택배 아저씨가 돈을 더 달라는데?"
"얼마나?"
"5만원"
"Call, 대신 자전거 안 다치게..."
집으로 날라갔다.
이미 아저씨가 자전거를 놓고 갔다.
박스를 보니 현관문보다 조금 크고 두께는 30cm였다.
빨간 애마,
그렇게 나의 애마가...
내 애마 BigHa가 그렇게 내 곁에 왔다.
애마 비용 : 총 145만원
- 자전거 115만원
- 국제 배송 : 25만원
- 택배 아저씨 추가 배송 비용 : 5만원
자전거와 관련된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