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는 장소에 매번 가고, 가면 매번 꼭 죽는다]
2002년 가을
본가에 갔더니
로봇 청소기가 삘삘~ 거리며 방안을 돌아다녔다.
아버지께서 선물로 받으셨다면서...
자랑삼아 작동시킨 로봇청소기는
힘찬 소리대비 청소 능력이 떨어져
뭐 그닥~...
속된 말로... 탐나지 않았다.
아파트 구조를 보면 신발을 신고 벗는 현관이 있다.
먼지 유입 방지 차원에서 약간의 턱(높이차)을 둔다.
이 로봇 청소기가...
현관 신발 벗는데만 가면 멈추지 않고 떨어져서...
올라 올 방법이 없다.
신발 주위를 빙빙 돌다...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어서야 죽어버린다.
로봇이 청소할 때는...
그래서 반드시 쳐다봐야 한다.
꼭 딸래미가 학원가서 뭐 하나 배워와서...
부모나 친구들에게 자랑할 때 안보면 OO하듯이...
이 청소기도... 청소할 때 꼭 봐야 하고...
떨어지면 주어 올려야 한다.
또 뒤집어져 있으면...
배터리 떨어질 때까지... 계속 징징 거린다.
(한번은 지켜봤다. 3시간 징징대다...죽드라)
"강아지도 아니고 이거 뭐여?"
한가지 다행인 것은...
로봇이 청소한답시고 돌아다닐 때...
울 돐도 안된 딸래미가… 그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무척 좋아한다는 거다.
(청소기는 개가 아닌데...)
아버지는 그 로봇 청소기를 내게 주셨다.
청소를 하라고 주신 것은 아니고...
집안에서 가장 막내인 울 딸래미가 좋아한다는게 이유다.
그렇게 로봇 청소기는 우리집으로 입양됐다.
우리집에서 로봇 청소기를 작동할 때는 항상
현관 주위를 책으로 높게 쌓았다.
당연히 현관쪽으로 떨어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나름 훌륭한 전략이다.
청소를 하기 전에 책꽂이에서 책을 쭈욱 뽑아다...
현관 문턱 주변에 쭈욱 쌓는다.
청소기 재롱이 중요한건지...
딸래미 재롱을 보고 싶은 건지... 어쩔땐 헤깔린다
(저걸 그냥 확~~ 뽀사버려?)
현관말고 복병이 하나 더 있다.
집집마다 쇼파의 형태가 조금씩 다르다.
우리집 쇼파의 높이는 바닥에서 10cm 정도다.
짧은 다리가 쇼파 전체를 지탱하는 구조다.
그런데
이 청소도 잘 못하고... 시끄럽기만 한... 그나마 딸래미의 장난감으로 전락한 이 로봇청소기가
청소할 때마다 현관주변에 책까지 쌓아야 하는 불편을 초래하는 이 로봇 청소기가...
쇼파 밑으로 들어가 "낑기는..." 일이 발생했다.
한번 낑기면... 오도가도 못하고...
계속 징징거리다가...
뻗어버린다.
결론 : 로봇 청소기를 돌리려면...
- 현관 주위에 책을 주욱 돌려 쌓는다.
- 쇼파 다리에 책 두권을 바쳐 놓는다.
(이게 뭔 짓인가? 그냥 걸레로 닦고 말지...)
그나마 다행인건...
로봇 청소기가 애교라고는 눈꼽만치도 없어서...
딸래미를 위한 특별 이벤트를 하지 않는다.
딸래미의 관심이 확 떨어졌다는 얘기다.
그 이후로...
난 로봇 청소기를 보지 못했다.
마누라가 버렸는지... 문이 열린 틈을 타 집을 나간건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토들러 딸순이가 벌써 고1이 됐다.
인민군이 무서워한다는 중2가 지났건만…
여젼히 고1 딸순이가 무섭다.
무슨 말만하면 코보다 입이 더 많이 튀어나온다.
한번 나온 입은 엥간해서 들어가지 않는다.
말이 샜다.
로봇 청소기는... 그렇게 입양됐고 그렇게 사라졌다.
마누라가 유통업계에 종사하다 보니...
김포 고촌읍에 가는 일이 많다.
새로 생긴 택지에 거대 물류센터가 생기다 보니
사람과 차가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4거리마다 신호등은 박혀있다.
사람과 차가 없어 보통 점멸 신호만 들어왔었는데...
요즘은 신호등이 규칙적으로 작동한다.
4거리에 자리잡은 신호등은...
3방향에서 진입하는 차가 있건 없건 많건 적건간에...
지정된 시간만큼 켜지고 꺼진다.
동시에 작동하는 건널목 신호가 이미 off로 바뀌어도...
차량 지시 신호등은 꽤 오랜동안 바뀌지 않는다.
물류센터에서 좌회전 하는 차가 그 도로 물동량의 99%가 넘는데도
한번의 좌회선 신호로 빠져나가는 차량댓수는 10대가 고작일 정도로 시간이 짧다.
그리고 좌신호가 꺼지면...
그 4거리에는 아무도 지나지 않는다...
길이 막혀서 못나가는게 아니라...
불합리한 신호등에 막아서... 그래서 막힌다.
(한국 수출입 흑자가 최대란다.
그런데 흑자의 원인이... 수출이 많아서가 아니라
수입을 극도로 자제해서란다... 먹먹하다.)
여기 뿐만이 아니다.
500M 떨어진 4거리에서도 마찬가지다.
88번 도로로 진입하려면...
이 4거리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아야 하는데...
그 짧디 짧은 좌회전 신호에 6대가 고작 지나간다.
덕분에 김포 고촌읍에서 88을 타려면...
30분은 족히 기달려야 한다.
모든 길은 뻥뻥 뚫려 있는데...
신호등이 차를 막아 세우는 꼴이다.
경찰이 없으니 불법 좌회전을 하면 안되냐고?
경찰보다 무서운 CCTV가 4거리에 달려있다.
비보호 팻말 하나 붙일 생각도…
좌회전 신호 주기를 조정할 생각도 없으면서…
CCTV는 재빠르게 달아놨다.
덕분에 모든 사람이 신호를 잘 지킨다.
로봇 청소기를 미워하는 이유는...
맨날 죽는데서 죽는다는 것이다.
몇번 죽으면 그 장소를 기억해서
맨날 죽는데를 안가면 되는데...그게 안된다.
아니다. 그걸 안하도록 만들어졌다.
청소가 끝나면 충전을 위해 지 집으로는 잘도 찾아서 들어가는데
맨날 죽는데는 찾지도... 기억하지도... 회피하지도... 않는다.
내가 이 4거리를 미워하는 이유는...
네갈래길중 한쪽 길에선 엄청 줄서서 기다리고 있고
나머지 3길에선 그 누구도 없는데도...
지 역할, 지 시간, 지 주기를 지킨다는 점이다.
좋다.
나머지 3거리에 차와 사람이 있건말건
지 역할, 지 시간을 지키는 거... 좋다.
(간혹 할아버지 할머니가 길을 건너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이 신호등을 미워하는 이유는...
나머지 3군데는 그렇다치고...
많이 밀려있는 한군데의 신호등 시간만 두배로 늘려주면
30분까지 기다릴 이유도 없다.
끽해야 2~3번만 기달리면 충분히 지나간다.
내가 로봇 청소기를 미워하게 아니다.
로봇 청소기를 그렇게 만든 놈이 밉다는 얘기다.
내가 신호등을 미워하는게 아니다.
신호등을 그렇게 조종한 놈이 밉다는 얘기다.
4거리마다 달려있는 그 수많은 CCTV는 벌금 부과용이다.
사람을 쓸데없이 피로하게 만들고
욱!!!하게 만들어...
사회 전체를 피로하게 만들어 규칙을 위반하게 하고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칙금을 부과하는 용도다.
그게 아니라면... 아니라는 이유를
말이 아닌 신호등의 주기, 시간 등의 소통량 개선율로 말해달라.
사람들을 쓸데 없이 피로하게 만들면...
피로도는 폭력을 수반한다.
차가 많아서 밀린게 아니라
신호조정을 안해서 30분 이상 길바닥에서 늘어선 사람은…
반드시 과속으로 응답한다.
과속을 해야만 잃어버린 시간을 보상받는다.
과속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누구도 계산하지 않는다.
산업사회에서 피로해진 사람들에게 “욱!!!” 하지 말라고 캠페인도 벌이는 지금이다.
물론 ... 욕만 하고 픈건 아니다.
경찰이 신호등과 관련하여 그간 칭찬하고픈게 있다.
"좌회전 후 직진" 신호 순서를 "직진 후 좌회전"으로 바꾼거다.
딱 하나다. 칭찬하고픈게...
문제는 딱 하나인게 문제라는 거다.
많은 노력을 한거 안다.
그래서 억울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 머리속에 기억나는 건 이거 하나이고...
그간 많은 노력을 기울여 만든 (당신들은 노력해서 잘 만든... 그러나 내가 욕하는 그 억울한) 시스템에...
어제도 오늘도 내가 욕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일은 욕을 하지 않게 해주기를 바란다.
진심이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
이건 인간이 할 짓이 아니다.
요즘은 기계도 학습을 하는 시대다.
그런데 인간은 학습을 하지 않고...
자기가 할 바를 다 했다고 뻔뻔하게 말하고 있다.
로봇청소기를 현관에 꼴아박게 만들고...
로봇청소기를 쇼파에 낑기에 만든 놈들도...
자기가 할 바를 다 했다고 말했었다.
(요즘 청소기는 다 개선됐다. 신호등만 그대로다.)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
주변을 좀 살펴야 한다.
20년전에는 그래도 됐었겠지만...
지금은 주변을 살펴야 한다.
"사람들 피로하지 않게 신호등 관리 좀 잘해라..."라고 말하지 않겠다.
"사거리 신호등은 3주기내에 무조건 소통하라..."라고
그대들의 규정, 시행규칙에 넣어달라고 말하겠다.
시민들의 목소리도... 그가 구체적이지 않았다. 추상적이었다.
우리 시민들도 좀 구체적으로 바뀌자.
"우리의 교통 수단... 아무리 막혀도...
신호 3번만 기다리면 무조건 빠진다..."는 상식을 심어달라.
"공무원도 이렇게 로봇 청소기 만들면... 짤른다"는 상식을 심어달라.
이게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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