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3/09

012. [DIY] 발 받침대

발 받침대

어떤 취미든 간에 초기에는 마음이 들 뜰 만큼 재밌다.
흥미롭고, 기다려지고 설렌다.
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켤 때 은은하게 퍼지는 휘튼치드 향은…
여자 인간을 좋아하며 때로는 가슴 아팠던 풋시절에
여자 인간에게서 풍기는 향기를 맡을때 만큼 설렌다.
톱질은 그녀를 만나는 설렘이다.
힘들지만 전동톱을 쓰지 않는 이유다.
가죽 공예의 수많은 단계 중에 제일 재밌는 부분은 바느질이다.
한땀 한땀
무언가 내 손에서 조금씩 만들어진다.
5cm 전진하는데 보통 5분 걸린다.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과정이...
간혹 바늘이 내 살을 찌르고 들어오는 아픔도 이길 만큼
바느질은 재밌다.
바느질이 끝나고
완성물을 보고 있노라면
딱 힘들었던 만큼만 성취감이 올라온다.
깔끔한 바느질과 끝 마무리,
오차없는 설계와 실수 없는 재단, 마무리에 스스로 감탄하곤 한다.
이런 감탄이 반복한다.
그런데 허무함이 있다.
맘에 드는 디자인에 깔끔한 커팅, 실수없는 바느질과 마무리를 했는데도…
허전함까지 생긴다.
 | 옆에 누가 있는데도 허전함을 느낄 땐 정말이지 정말 허전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그분께 정말 미안하다.
왤까?
그건 핵심이 아니라는 얘기다.
핵심을 찌르지 못하니 허전함이 남는다.
그렇다면 가죽 공예의 핵심이 뭘까?
모든 답은 질문에 있고, 제목에 있다고 했다.
나무 공예
가죽 공예
철 공예
제본
맞다.
재료다.
나무 공예의 핵심은 좋은 나무에 있고
가죽 공예의 핵심은 좋은 가죽에 있다.
맛난 요리의 핵심은 당연히 좋은 재료다.
재료가 좋으면 맛은 배신하지 않으며
비록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만회가 가능하다.
기술과 기교는 그 다음이다.
기술과 기교가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데도 허무함이 떨쳐지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재료다.
다행인건 비로서 본질에 접근했다는 뜻이다.
인간 세상에 견주어 보면 
가장 중요한 게…좋은 사람이다.
주변과 관계가 핵심이 아니라는 얘기다.

핀란드산 소나무 레드파인을 쓰다듬고 있노라면…
풋청년의 설레임이 있다.
좋아하면 할수록 좋은 향이 방안에 가득 채워지며…
쓰다듬고 예뻐할수록 매끄러운 표면이 나를 껴안는다.
그렇게 설레이고 입가엔 미소가 진다.
맞다.
재료가 핵심이다.
재료에 대해 아는게 없어도 좋은 건 저절로 느낀다.
난 주말 목수다.
토요일 아침 8시면 차를 몰고 인천 대신특수목재로 간다.
31km다. 왕복 62km, 5리터, 6천원.
톨게이트 통행요금은 900원 + 500원이다. 왕복 2,800원.
차비만 9천원이다.
거기엔
만나고 싶은 사람과 나무가 있다.

각재도 샀었다.
판재도 샀었다.
합판도 샀었다.
이번 주는 집성목이다.

1.
작년 스프러스 판재 4장으로 만든 3m짜리 책상을 집성목으로 바꾸려 한다.
이 책상이 나빠서도... 맘에 안 들어서도가 아니다.
맘에 든다. 다만 나무를 너무 몰랐다.
판재 4장 옆면을 판재끼리 고정했어야 흔들림이 없는데...
난 그냥
책상 프레임에 고정하면 흔들림은 없을 줄 알았다.
나무 두께도 18mm니까… 
흔들림은 잡아주리라 예상했다.

2.
당장 스프러스 나무가 필요한데…
새로 사기 보다는
기존 책상 상판을 집성목으로 바꾸면서
새로운 나무(집성목)도 경험하고...
스프러스 재활용도 노렸다.
목재는 버릴게 없어 그래서 좋다.
다만 집성목의 최대 길이는 2.4m다.
3m인 책상이 다소 짧아지기는 하지만
현재 ‘ㄴ’자 책상 구조를 ‘ㄷ’자로 바꾸면서 모자라는 길이를 메꾸려한다.
책상을 ‘ㄷ’자 형태로 놓고…
책장도 세로 ‘ㄷ’자로 두어서(이렇게 말이다.)

공간의 분리가 수납이 되며
아늑하고 외세의 침략에 대해 간섭이 적은 
나만의 공간을 꾸미려 한다.


애쉬와 스프러스 집성목을 3장 샀다.
길이 2.4m, 폭 30cm...
나무 한 장 가격은 평균 2만원 정도다.
3장을 나란이 붙이면 90cm 폭이 나온다.
사무용으로 쓰는 책상의 세로(깊이)은 보통 65cm이다.
90cm면 상당히 넓이다.
집성목을 3장 사서 나오는데…
짜투리 나무가 제법 보인다.
대신특수목재에서는 짜투리 목재를 누구나 가져가도록 외부에 둔다.
물론 무료다.
집성목을 길게 자르고 남은 가로세로 2cm정도로 길이는 2.4미터다.
제법(12줄) 챙겼다.
발 받침대를 만들면 좋을 것 같다.
발 받침대야 뭐… 금방 뚝딱 끝날 것 같으니…
책상보다 발받침대부터 우선 만들자.

발 받침대의 크기를 정하자.

폭 설정

실물없이 예제없이 머리속에 그린 디자인에 길이를 정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다.
발받침대의 전체 폭을 설정하기 위해 A4지 두장을 발에 깔았다.
A4지는 297 * 210mm이다.
A4지를 가로로 놓고 발을 올려놓았더니(600mm)…
좌우로 남는 공간이 제법 있다.
이번엔 세로로 놓았더니(420mm)…
너무 좁다.
한장은 가로로, 한장을 세로로 놓았더니(500mm)…
안성마춤이다. 딱이다.
주어온 나무의 길이는 2,440mm이다.
500mm로 짤랐더니
에고… 440mm의 짜투리가 생겼다. 아깝다.
그래! 2,440 / 5 = 488
톱질 1회에 날라가는 길이가 평균 1mm이고…
중간에 옹이라도 만나는 날이면 날려야 해서…
만약
3,600mm 나무를 가지고 있다면… 500mm이 맞지만
2,440mm 나무는 480이 맞다.
이왕 짤랐으니… 이번만 500mm으로 가자.
결론 : 480(~500)mm로 확정

길이(세로)

고민이다.
책상밑 무릅 이하가 움직이는 활동 공간을 측정해야 한다.
* 무릅 아래의 길이
* 무릅의 스윙 각도에 따른 cos()=값
일반적인 책상의 세로 길이(깊이)는 55~70cm이다.
* 무릅이 90도 꺾여있을때 발끝에서 책상 끝까지의 거리
결론 : 300mm가 최적으로 보인다.
길면 받침대를 책상 깊숙히 밀어넣을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짧으면 활동거리가 제한적이라서 오히려 불편해진다.

높이

고민이다.
* 인터넷에서 여러 발받침대를 참고했다.
* 또 책을 포개서 발을 올려놓고 적정 높이인지… 숱하게 측정했다.
* 무릅의 스윙 각도에 따른 tan()=값
* 좌우 기둥으로 쓸 나무도 고민했다. 가성비가 우수해서 내가 즐겨사용하는 나무는 골만社의 스프러스이며, 사양은 3,600mm * 180mm * 18mm(T) 이다.
* 앞쪽 제일 낮은 높이와 뒤쪽의 제일 높은 부분의 높이차는 최소 8cm는 보장되어야 한다.

BUSINESS REQUIREMENT

Must Have…
* 다리를 올렸을 때 편해야 한다.
* 견고해야 한다.
* 발을 올려놓았을 때 아래쪽으로 미끄러지지 않고 고정되어야 한다.
 -> 그래! 턱(20mm)을 세워 높이자.
Like to…
* 한번의 톱질로 확보 가능한 크기였으면 좋겠다.
* 나무의 짜투리가 거의 없었으면 좋겠다.
* 만들기가 수월했으면 좋겠다.

자! 결론이다.

* 길이 : 300mm         ;
* 높이
 * 앞쪽 50mm
 * 뒤쪽 130mm
*  폭 : 480 ~ 500mm
 * 2,440mm 일 때 480mm
 * 3,600mm 일 때 500mm
  • 이렇게 생겼다.(도면이 필요하면 말씀하시라.)

만들자

  • 스프러스의 폭은 180mm이다. 마침 설계도를 보면 50mm와 130mm다. 공교롭게도 맞아떨어졌다고 생각하면 안된다.ㅎㅎ
  • 이렇게 대각으로 짜르면… 한번의 톱질에 좌우 하중을 지지하는 기둥이 끝난다.ㅎㅎ

  • 역시 잘 짜른다. 난 풋 청년이다.

  • 다소 어긋났지만… 이 정도면 사포질로 보정이 가능하다.

  • 이 한장의 사진에 밑면과 대각의 길이가 한번에 측정된다.

  • 힘없이 올린 발이 미끄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코를 붙여 높였다.

  • 물론 본드를 바르고 못질도 했다.

  • 기둥에 한번 올려봤다. 맘에 든다.

사포질

가죽에서 꽤 힘든 부분은 무두질이다.
목공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사포질이다.
날리는 먼지에… 후둘거리는 팔로는 사진을 찍는게 어렵다.

드디어 완성

  • 양쪽에 피스를 박았다.
  • 피스(나사)를 자그마치 22개나 썼다. 1개에 35원꼴이니 770원 어치나 된다.ㅠㅠ
    (매번 느끼지만, 나사와 못 가격을 무시하지 못하겠다.)
  • 발을 올려놨는데… 중간에 하중을 잡는 기둥이 없어서 나무가 쳐진다.

  • 밑에서 바라본 실물

  • 옆면

  • 중간에 나무를 덧댔더니 굳이 가운데 기둥을 만들지 않아도 충분하다. 좋다.

  • 드디어 끝났다. 기쁘다.

  • 받침대가 건조후 뒤틀어지는 걸 막고자 뒷면에도 각목을 하나 댔다.

  • 신이시어… 이걸 진정 제가 만들었단 말입니까?

총 비용

기둥 : 300/3600 * 1만원 = 833원
피스 : 35원 * 33개 = 1,155원
재료비 : 合 1,988원 들었다. 물론 인건비 제외다.

결론

저렇게 짤려있는 자투리 나무가 있었기에 손쉽게 만들었지…
원판에서 나무를 재단하고 짤라서 붙였다면…
전동톱이 없으면 불가능할 만큼
매우 힘들었으리라…본다.
나무는 버릴게 없다.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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